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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정치의 이해

by JOSH.CHO 2025.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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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 전통에서 정치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활동에서 시작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서 볼 수 있는 '폴리티케'라는 단어는 오늘날 정치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폴리틱스'라는 낱말의 어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관조의 학문으로서, 자연학과 형이상학이 속하며 진리나 앎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 둘째는 생산적 학문으로서, 경제학, 건축학, 예술 등이 이에 속하며 실생활에 유용하거나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는 실천적 학문으로서, 여기서 정치학 등이 속하며 고귀하고도 탁월한 행위와 시민의 공적 행복을 진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서양에서의 정치가 시민들의 공적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는 활동으로 이해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는 국가를 잘 운영하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지배권력을 피지배자들에게 행사하는 활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피지배자들의 복종을 이끌어 내는 것은 과거에는 군주와 귀족 등이 보유한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되었다. 오늘날에는 전문적 정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지닌 정당한 권위가 그것을 가능하여야 한다고 여긴다. 정치를 지배와 동일시 한다면 구성원들이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통치와 다르기 때문에 국가의 행정적 관리로 단순화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피지배자의 순종을 강제하기 위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활동으로 축소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통치는 구성원들 간의 평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배자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부, 신분, 지식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또한 통치는 국가의 행정적 관리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행정적 관리라 하면 기본적으로 체계의 기능적 운동을 원활하게 진행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근대국가는 국가의 체계적 기능을 위해 국가구성원들의 생활 습관과 일상적 활동을 관리하고 훈육하는 통치로서의 정치를 일반화시켰다. 근대국가의 구성원들은 주권을 지닌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즉, 단순히 생명을 가진 인구로 여겨졌다. 근대국가에서 인구의 관리는 통치의 핵심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고대 그리스의 전통에서는 통치라는 관점에서 국가를 운영하지 않았다. 고대인들은 통치가 아닌 정치를 통해서 국가를 운영하였기 때문이다. 정치는 통치와 달리 구성원들 간의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이것은 곧 타인을 지배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는 어느 누구도 타인을 지배할 수 없게 하는 법칙 질서의 상태, 즉 평등의 법칙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권력의 결핍은 폭력이 아니라 오직 토의와 설득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토의와 설득은 부담 없이 공개적으로 말하고 설득하며 반대할 수 있는 자유를 전제한다. 정치권력은 이상과 같은 자유와 평등 속에서 등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배력의 독점적 행사나 국가구성원의 훈육 및 관리와 거리가 멀었다.

 역사적 기록으로 보면 아테네 최초의 정치체제는 귀족정이었다. 귀족들은 아레오파고스라는 의회를 결성하였으며, 통지 경작을 평민과 노예에게 맡기고 정치에 전념하였다. 아레오파고스는 법정과 의회의 기능 모두를 담당하였다. 오직 귀족만이 공직에 나가 정치를 할 수 있었다. 정치가 귀족 중심으로 운영되니 평민과 노예들의 권익은 늘 침해당하였다. 각자의 이해관계는 모두 다르지만, 귀족의 지배권력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 똑같았다. 기원전 8세기 무렵, 그리스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뉘었다. 지배력을 가진 귀족과 지배력이 없는 평민이었다. 평민들은 항상 굶주렸고, 귀족들에게 빚을 지며 살았다. 세월이 지날수록 두 계급 간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이런 위기는 기원전 6세기경 솔론의 개혁으로 해소되었다. 솔론은 빚이 있는 평민 신분을 잃은 농민들의 부채를 탕감해 주고 자유인으로 만들었다. 이에따라 귀족들은 큰 피해를 보았다. 또한 솔론은 평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귀족의 일방적 지배를 막아섰다. 덕분에 부유한 평민은 귀족과 동일 선상에 놓였다. 또한 솔론은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법정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사법권도 주었다. 하지만 솔론의 개혁이 곧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솔론에 의해서 정치의 새로운 원칙이 자리 잡았다. 바로 평등이었다. 평등은 그가 만든 새로운 헌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선천적으로 정해진 것으로는 그 누구도 타인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 평등원칙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었다. 솔론은 평등원칙의 구현을 위해 지배권력을 제거하는 개혁 제도를 만들었다. 솔론 이후 계속된 민주적 개혁 덕분에 아테네 시민들은 자유인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아테네에 가면 아크로폴리스, 아고라, 프닉스와 같은 광장 유적지를 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종교적 신성성과 아테네 국력의 과시를 위한 장소였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 위치한 아고라는 그리스인들의 모임 장소였다. 아고라를 우리는 공적 공간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정치적 행위를 하였으며, 장사를 하기도 했다. 아고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어 내놓은 정보와 의견들을 자유롭게 교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프닉스는 아크로폴리스 서쪽에 있는 언덕이다.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민회를 열었다. 시민들은 정치, 군사, 종교적 사안에 관해 토론하고 투표하였다. 모두가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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