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들의 정치를 한번 돌아보자. 정치를 경제와 종교의 제도영역처럼 국민국가와 같은 정치 공동체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처리하는 기술적이고 행정적인 제도영역이라고 간주한다. 만일 정치가 이처럼 전개된다면, 그것은 특정 전문가만이 관여할 수 있는 기술적인 영역으로 고정된다. 즉 정치적 문제에는 전문적으로 특화된 지식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헌법적으로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모든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면서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이 있다. 그러나 정치를 위 설명과 같이 전문적 제도영역으로 운영한다면, 민주주의 정치제도 내에도 엘리트의 지배라는 난제가 발생할 것이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 정치는 고대 민주주의와 달리 대의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주권은 여전히 국민에게 있으나 그것의 행사는 국민의 대표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의회는 점점 몇몇 집단의 대표자들이나 엘리트들에 의해 채워져 갔다. 근대 민주주의 체제는 이처럼 우월적 지위를 가진 자들의 이권을 보장하는 지배와 피지배의 체제로 변질되었다. 정치의 제도적 고정화는 정치의 활력을 잠재워 버리는 문제도 야기한다. 오늘날 정치는 몇몇 세력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분쟁을 조정하는 제도로 여겨진다. 이런 방식은 정치란 세력 간의 분쟁조정의 문제이고, 분쟁조정의 유일한 공식적인 장소는 의회일 뿐이라고 간주한다. 그렇다면 세력이 없는 구성원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가 없다. 세력이 약한 사회적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를 부정적인 운동을 통해 알리려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행위는 의회라는 공인된 공의 존재와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합법적 수단에 의해 탄압되거나 정치적 공론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고립된다. 이렇게 자기 무력감에 빠진 소수의 사회적 구성원은 제도정치를 혐오하며 결국 정치 자체에 대한 파괴로 이어졌다. 20세기 전반기 유럽을 넘어 세계를 휩쓴 전체주의의 광기는 시민을 무력한 대중으로 만들어 정치의 의미와 민주적 규범성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무화시켜 버림으로써 일어난 비극이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고대 그리스의 정치문화는 오늘날의 정치문화와는 달랐다. 아테네인들은 정치적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영광과 행복을 얻는다고 생각하였다. 정치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인간사에서 벗어나 탁월한 존재로 태어나는 기회를 보장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폴리스는 생계의 무자비한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곳에 참여하는 가난한 자들 역시 재판관이 될 수 있었으며, 중대사를 결정하는 최고 결정권자도 될 수 있었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경험을 하는 인간은 이러한 경험을 선사한 공동체에 큰 유대감과 믿음을 품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이 고립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게 된다. 고대의 정치 공간은 이처럼 한 인간에게 새로운 실존으로 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오늘날 국가는 집단적 살림살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이익집단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국가의 정치란 집단적 생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발생하는 대립을 조정하는 제도적 기능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적 정치에 참여하면 참여할수록 이해관계를 우선으로 삼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고대 그리스와 비교하였을 때, 현대 정치는 구성원들에게 탁월한 존재로 재탄생할 기회를 부여하기는커녕 생계에 연연하는 비루한 존재로 남아 있게 만들고 있다.
현대 정치는 헌법적 제도로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기본적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는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 면에서 현대 정치는 고대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다. 왜냐하면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노예와 여성, 그리고 약소국을 폭력적으로 제압하면서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만성을 지적할 때, 우리가 전제로 삼는 것은 진정한 정치란 모든 구성원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범적 전제를 우리 인류에게 알려 준 이들은 사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고대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들은 이 원칙을 자기네 정치적 공동체의 규범으로 삼았지만 그것의 급진적 구현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었다.
현대인들은 또 사태에 대한 규범적 이해나 고찰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정치는 공동체의 보존이라는 기능적 목적을 효율적으로 잘 수행해 왔다. 하지만 정치는 공동체의 보존과 구성원의 집단적 생계유지를 위해 이루어지는 활동으로만 단순화될 수 없다. 집단적 생계유지를 통한 정치 공동체의 보존이라는 목표는 나날이 달성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이 목표에 집착한다. 심지어 해당 목표를 달성에 필요하지 않은 구성원들은 배제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정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상상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정치를 성찰해야 한다. 정치의 과거와 현재를 규범적 차원에서 새롭게 성찰할 때 우리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정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은 현재 우리가 설정하고 있는 정치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앞으로 정치적 행위와 정당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상상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정치에 대한 규범적 이해는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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