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서 근대의 출현은 주체적 자아의 확립이라고 하는 의의를 통해 설명된다. 여기서 주체적 자아의 확립이란 인간 존재의 근거와 인식의 주체로서의 인간 자아를 정립한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의 존재 근거를 신과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설명하지 않고 인간 자신의 자아로부터 규명하였다. 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 근거를 종교적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 존재 자체가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근대철학자들의 이러한 사유는 개인이 사회의 주체로 부각되기 시작한 시대 배경들과 무관하지 않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등이 개인주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출현한 개인주의 사상의 뿌리는 홉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 홉스는 자연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했다고 역설했다. 개인주의 사상의 기원을 홉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그의 사상이 개인주의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홉스에 따르면 개인은 소유에 관한 한 일정 정도의 권리를 가지며, 그러한 권리는 자연상태에서의 평등함에서 비롯된다. 이는 근대 개인주의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홉스가 주장한 소유적 개인주의는 로크에게로 이어진다. 로크의 사상은 자연법적인 기초 위에서 구축되었다고 평가하는데, 이유는 사회 혹은 국가의 구성원들이 지니는 재산권에 대해 자연 상태에서의 개인의 자연권과 합리성을 근거로 옹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로크는 사회와 국가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계약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물이라고 생각했다. 로크로부터 시작된 자유주의는 회의주의 철학자 흄과 비판철학자 칸트를 거치면서 더 정교해졌으며, 공리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민주주의와 결합된 정치이론으로 발전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에 의해 경제이론이자 자본주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리기가 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를 자유방임주의라고도 한다. 자유주의에서는 국가가 아닌 시장이 경제를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는 자유주의를 시장주의라고도 부른다. 자유주의는 인간 행위의 모든 동기를 이기심에서 찾고 있다. 자유주의는 이기심을 긍정적으로 해석한 이데올로기이다. 이기심의 충돌은 강한 자가 좋아하는 쪽으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이 시장의 메커니즘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개인의 이기심을 옹호한 애덤 스미스의 사상 역시 근대 개인주의의 전통을 형성한 한 축이라고 볼 수 있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자유방임의 상태는 어떠한 구속에도 놓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인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상태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의 기대와 달리 시장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재산권에 바탕을 둔 권리 행사만을 보장하기 때문에 삶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가치 분배의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없었다. 개인의 정치적 행위 또한 보장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시장은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긍정적 기능을 넘어 오히려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유일한 권력이 되어 가고 있다. 다양한 경제력의 중심들은 시장에서 경쟁적 관계에 놓일 경우 상호 경제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의 결정이 계급이나 계층적 이해와 연관될 경우 경제력은 필연적으로 정치권력을 압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자유주의가 그 근본적인 원리에서 현대사회의 다원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다원성의 단위는 개인으로 파편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개인들의 개성에 대한 관용적 태도만을 권하는 것 이상의 구체적 대안을 마련할 수 없게 된다. 롤스의 자아관은 오직 '도구적' 공동체, 즉 이미 규정된 이해와 정체성을 갖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촉진할 목적으로 들어가는 공동체만을 허용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다원성이나 다양성으로 보이는 외적 양상은 사실 욕망의 다양성일 뿐이며, 욕망 충족 수단의 다원성일 뿐이다. 결국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보편화된다는 점에서 의식의 다양성과 개인의 삶의 다원성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세계화는 지구촌 구석구석의 고유한 삶의 정체성을 온존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원주의적이지 않다. 자유주의와 시장중심주의는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을 지지하면서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모순적인 위치에 서 있다.
다원주의는 현대 민주주의 발전의 기초이다. 20세기 초 영국에서는 국가의 독점적, 억압적 성격이 강화되면서 개인의 자유와 자치를 회복하기 위한 인식을 보였다. 이러한 인식은 다원주의 이론가들이 만들었으며, 이들은 개인과 집단을 국가에 예속시키고자 하는 정치이론에 도전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들의 입장은 국가권력이란 남용되기 쉬우며, 지배계급의 도구가 되기 때문에 '국가권력의 중립화'가 필요하고 국가권력은 다원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원주의는 철저하게 개인적 이해의 차원에서 개진된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원주의의 요구가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조응한다면 민주주의를 정치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모두 다원주의적 요구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집단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함께 경쟁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체제를 다원주의 체제라고 한다면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기업집단의 영향력이나 노동자나 소비자 집단의 영향력이 대등하게 관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대부분 기업집단의 영향력이 이를 압도하고 있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 가치의 보장을 위해 요구된 다원주의는 이제 개개인의 차원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다양한 가치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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