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류에게 세계화라는 단어는 더 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세계화라는 말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세계화와 유사한 맥락으로 사용되던 말이 그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계화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국제화라는 말을 사용하곤 하였다. 국제화라는 말은 우리의 관점에서 주로 국제사회로의 진출을 의미하거나 국가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면, 세계화는 정치부터 경제, 문화, 예술 등 전반적인 삶의 영역이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울리히 백은 세계화란 '국민 국가들과 그 주권이 초국민적인 행위자, 이들의 권력 기회, 방향 설정, 정체성, 네트워크를 통해 마주치고 서로 연결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세계화는 여러 국가 간의 다양한 교류로 타문화에 대한 이질감을 줄일 수 있고 문화 다양성을 촉진시킨다. 또한 세계화로 인한 정보의 활발한 소통이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한 국가들의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는 욕구를 가지게 한다. 세계화는 저개발국가들에게 경제성장의 기회 또한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의 세계화가 문화의 식민화를 부추기고 있으며, 세계화가 민주주의의 확산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 역시 일차원적인 진단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저개발국가의 경제성장에 기여를 하는 면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 국가의 경제적 예속성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세계화로 인한 위기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복지를 줄이고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서 부자들이 이러한 자본을 바탕으로 더 많은 생산성과 이윤 축적을 하도록 격려하는 사상이다.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라 자본이 개인의 이익을 찾아 국경이라는 담을 넘어서 자유롭게 이동하게 된 것이 바로 세계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화의 본질은 자본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본의 세계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얻도록 기업을 저비용 고효율 형태로 조정하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게 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 명분이다. 즉 구조조정은 효율성을 강조하고 목표로 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기업과 자본가들은 더 큰 이윤을 얻게 되고 경제는 잘 순환되지만, 그로 인한 혜택은 소수의 자본가 또는 기업에 돌아가고 다수의 인원은 더욱 가난해지게 된다. 신자유주의 사상에서 보자면 이러한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며,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 냉전의 해체는 군사력 위주의 대립은 완화했지만 경제적 패권주의가 그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나갔다. 경제적 패권주의는 에너지, 광물자원, 환경, 식량들을 둘러싼 패권주의로 나타난다.
기아란 한 국가 내의 식량 부족과 결핍을 의미하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기아를 해결하게 어렵게 만드는 요인도 기아의 발생 원인과 큰 차이는 없다. 현재 기아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저개발국가의 국민들일 것이다. 특히 정치 상황이 불안하거나 또는 부패한 독재정권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국가들의 경우 이러한 기아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기아 대책 관련해서 앞으로의 장래 역시 밝지 않은 이유는 기아에 시달리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식량을 재배할 땅이나 식량을 구입할 소득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을 위해서 효율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닌 인간의 효율성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고 보여야 할 것이다. 인간은 독단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칸트는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인류를 계몽으로 이끄는 것으로서, 이성의 공적 사용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은 군주에 대한 의무, 소속 공동체에 대한 의무, 사적 이해관계에 얽힌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에 구애받지 않고 이성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 삶을 모색할 때는 손해를 기꺼이 무릅쓰고 불편함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연대적 삶의 실천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연대의 의미는 책임을 나누는 것이며, 책임을 나눈다는 의미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데 참여함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빈곤의 문제, 생태적인 문제, 평화의 문제, 인권의 문제 등은 동정심의 윤리나 이타심과 같은 원리로 설명되는 도덕적인 태도로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다. 이런 도덕적인 관점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상류층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강화하고 부자들의 자선이나 기업이익의 사회적 환원 등을 촉구하는 긍정적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도덕적 접근은 그것을 실천하는 개인을 칭찬할 만한 근거일 뿐 시장이 지배하는 시민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과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회지도층들에 의해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선을 통해서 그들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될지는 몰라도 내일은 다시 그들의 자선을 기다려야 하는 사정은 변하지 않게 될 것이다.
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세계화를 잘 이해하고 현 시점에서 실천 가능한 이슈들에 대해서 조금씩 해결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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