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존재하는 이 세상은 무수하고 다양한 무엇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무엇들은 우리가 알던 모르고 있던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무엇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인류가 이룩한 많은 개별학문이 바로 노력의 결과들이다. 하지만 개별학문은 단지 무엇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며, 그 무엇들의 전체적인 구조 및 내적인 연관까지 집중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개별적인 무엇들이 환경 세계로서 복합적이고도 유기적임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한, 그것들 전체의 내적인 구조와 연관을 전체적, 근원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수한 대상들을 넘어 대상 세계,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로서 존재론이 개입되는 시점도 바로 그곳이다.
존재론은 개별과학적 탐구 대상 일반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을 바탕으로 하여 존재 세계에 대한 전체적이고 획일적인 이해에 다가서고자 한다. 먼저 존재자는 존재 방식상 크게 실제적인 존재와 이념적인 존재로 나눌 수 있다. 실제적인 존재의 근본적인 특징은 시간성이다. 즉 시간 내 존재를 의미한다. 이념적인 존재는 존재하되 비시간적 그리고 비 공간적 존재이다. 실제적인 존재는 개별적인 것과 또 보편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존재자를 존재 계기 또는 존재 방식이라는 시각 외에 그것을 필연적인 존재로 기능적인 존재로 또 현실적인 존재로 구분하여 헤아려 보는 것을 양상 분석이라고도 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우연이란 것은 존재 세계의 제반 인과계열구조 내에서 본질적으로는 원인을 갖는 것이며,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인식 상의 양상 규정이다. 인간의 의지가 자유 의지인가 아닌가를 둘러싼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문제 역시 인간의 의지와 사과와 행위의 전 과정이 완벽하게 인과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는 한, 세계관 내지 가치관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현실성과 가능성의 각도에서도 존재를 바라볼 수 있다. 목적론은 목적과 본성이 실재하며 그 목적과 본성이 현실화되는 것이야말로 자연 세계의 선이자 본질을 구현하는 완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삶이나 역사에서 고정된 방향이나 목적, 법칙, 본질 등은 오히려 창조적인 자유를 부정하며 삶의 개방성 역시 구속한다. 반역사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삶의 고정된 목표와 목적을 거부하며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열린 결말과 같은 가능성을 중시한다. 그리고 존재론은 참된 실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실체와 본질 사이의 문제도 다룬다. 이러한 다양한 관심들이 존재 구분의 문제와도 연결되기도 한다.
하르트만에 따르면 실재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인들은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존재층으로 구성되어 었는 존재형성물이다. 이 존재층은 정신, 영혼, 생명, 물질 등으로 구분되며 이러한 존재층들이 일관된 법칙에 따라 성층됨으로써 인간, 동물, 식물, 물체라는 존재형성물이 나타나며 이것들이 바로 실재 세계를 구성한다. 물질이란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게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경험되는 대상이며, 실재 세계의 궁극적인 뿌리이다. 물질의 본질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유심론과 유물론이 대립적인 관계를 띄고 있다. 한편 생명층은 물질층의 상단에 있기는 하지만 층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서 기계론과 생기론이 대립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 그리고 영혼의 본질에 대한 문제는 실제설과 작용설이 있으며 오늘날에는 전체설이 제기되고 있다. 정신은 실재적 존재의 최상층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심적 현상들이 개인적인 개별성을 갖고 있는 데 반하여 정신은 각각의 개인이 단절된 의식을 연결하는 초개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혼과 달리 시공의 제약에서도 벗어나 있기도 하다.
불교적 사고에서 보면 인간의 개별적 신체는 독립된 의미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오온의 결합물이다. 하지만 그 오온 또한 모두 공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와 같이 전혀 개별적인 독립성이 없는 하나의 흐름에 불과한 개별적인 자아를 지고의 실체로 여기며 내 것과 네 것을 나누며, 뺴앗고 시기하며 질투하느라 바쁘다. 우리가 흔히 "인생은 고해이다."라고 말할 때 '고'의 의미는 불교적으론 부질없는 것에 대한 애씀 또는 집착을 말한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은 인연 속에 잠시 머문 가상일 뿐이다. 이처럼 진정한 존재란 존재론적 관점에 따라, 정지의 좌표를 기점으로 불변적 고정치로, 때론 운동의 좌표를 기점으로 계속해서 운동치로 나타난다.
존재론에서 탐구되는 '무'란 차별 또는 결여를 의미하는 상대무일 뿐 절대무가 아니다. 생성이 존재의 결핍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정지의 좌표에서 생성은 무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이란 존재자에게 정지는 그 존재자의 자기동일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생명이라는 존재자의 존재는 운동인 것이다. 존재자의 존재를 운동과 생성에 두는 사고방식은 동양의 불교적 전통이나 기철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의 현실 또한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추동되고 규정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에 맞게 대응하는 존재론적 탐문과 훈련을 통하여 사태와 사물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과 합리적인 분별력을 제고할 수 있으며, 그 실천적인 대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적인 성찰과 훈련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인류 전반을 둘러싼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도 보다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문제해결 방안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 세계의 모든 존재자는 서로 모두 얽혀 있으면서 궁극적으로는 상호 공존과 조화를 통해 자기 보전의 실현을 그 본성으로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바로 철학적 존재론이 지향해야 할 근본이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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